화엄사 각황전 중수기 <공주로 환생한 시주>
전남구례군 지리산 화엄사는 신라 제24대 진흥왕 5년에 [544]여기[緣起]조사가 창건하고 화엄사라고 이름 하였다. 화엄사에는 각황전이 있는데 본래의 이름은 장륙전이라 불렀다. 이 장육전중수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온다.
조선조 제19대 숙종肅宗 <1674∼1720-46년간 재위>임금 당시 화엄사 주지는“계파”스님이 어느 날 하루는 대중스님들을 모아놓고 “삼국시대의 고찰
로서 여러 번 보수를 하여왔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장육전이 노후하여 중수를 해야 하는데 화주스님을 누구로 하였으면 좋겠습니까?“하고 말했다.
대중가운데 한 스님이 말하길 “누구나 다 화주가 될 수 없으니 무슨 방법으로 정 할까요? “
이때 계파스님이 “물통과 밀가루 독을 큰방 복판에 갔다가 놓고 스님들이 차례로 물통에 팔을 적신다음 밀가루 독에 손을 넣어 흰 가루가 묻지 않는 스님을 화주로 합시다.“ 하는 주지스님의 제안에 모든 스님들이 모두 찬동을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많은 스님들 중에 한사람도 밀가루가 묻지 않는 스님이 없었다. 그래서 남은 사람이라곤 풋내기 사미승인 공양주 하나 밖에 없어서 그를 불러다가 밀가루 독에 손을 넣게 하였더니 과연 그만 유독 팔에 밀가루가 묻지 아니하여 공양주를 화주로 선발하게 되었다.
화주승으로 선발된 사미승 공양주는 너무나 기가 막혀 울고 싶었다. 재주라고는 대중스님들의 밥 짓는 것 외에는 아는 시주도 없고, 말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며, 법력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도 큰 장육전을 중수하는 화주가 되었으니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생각 생각하다가 주지스님께 찾아가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소승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엽전 한 푼 달랄 집이 없으니“ 하고 울었다. 그러나 주지 스님은“대중이 결정한 일이니 어찌할 방법이 없다.” 면서 시주 권선문책 하나를 내주었다.
화주승이 된 공양주는 권선문책을 법당 부처님 앞에 올려놓고 하소연하기를 “부처님도 참 너무하십니다. 불사를 이루게 하시려면 하필이면 왜 저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미승을 뽑으십니까? 부처님은 신통이 자재하시니 능력이 있는 스님으로 화주승을 다시 뽑아 주세요. 그러면 공양은 맛있게 지어드리겠습니다.“하고
내려와 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부처님이 오셔서 “화주를 바꿀 수는 없게 되었으니 네가 그 권선책을 들고 내일 동이트기 전에 절문을 나서되, 누구를 막론하고 제일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하라고 매달리면 이루어 질 것이니 그렇게 해보라”는 것이었다.
화주승은 부처님말씀만 믿고 바랑 속에 권선문 책을 걸머지고 산문을 벗어나 남원을 향하여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데, 처음 만난 사람이 화엄사에 자주 와서 밥을 얻어먹던 걸인 노파였다. 하지만 부처님의 계시대로 처음만난 사람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노 보살님 그간안녕 하십니까?” 나야 밤낮으로 얻어먹고 다니는 신세라 늘 그렇지요 뭐, 그런데 화엄사 공양주스님 아니십니까? 내가 갈 때마다 신세를 많이 졌는데 어디를 가시는 길이요? “
“할머니 이것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
“우리 절 장육전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퇴락하여 다시중수를 하려고 하는데 내가 시주를 걷는 화주승의 책임을 지고 나왔습니다. 할머니가 시주를 해주셔야됩니다. ”
“시주를 하라 구요 나도 얻어먹는 주제에 시주를 어떻게 하란 말씀이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일 푼 동참도 성불을 한다고 하였으니 한 푼도 좋고 반 푼도 좋으니 시주를 해주십시오.“
“나는 한 푼이고 반 푼이고 없소 마는 그렇게 한푼 두푼을 모아 가지고 그 큰 불사를 할 수가 있겠소? “ “그렇게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큰일입니다.”
“나도 오가며 얻어먹는 신세라 화엄사의 은혜가 적지 않은데 ”하고 그 노파가 무슨 생각을 한참을 하고 서 있더니 “이 몸이 죽어 왕궁에 태어나 큰 불사를 이룩하도록 문수보살이시여! 가호를 내리소서.”발원하면서 절한 뒤 연못에 몸을 던져 그만 빠져죽고 말았다. 화주승은 너무 살인을 한 것 같은 죄책감에 그 길로 멀리 도망쳤다.
화주승은 살인자로 몰릴까봐 겁을 먹고 입속으로 “나무아미타불 대방 광불 화엄경 마하반야 바라밀“ 염불을 하며 할머니의 명복을 빌면서 사람의 눈을 피해 얼른 자리를 떠나 도망을 치며 구걸생활을 하였다.
이제는 화엄사로 들어갈 염치도 없고 보니 일개의 걸승이 되어 조선 팔도를 떠돌다가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7-8년간 몸을 피해 다니느라 모습은 거지고 머리는 길어서 몽두난발이었다. .
이때 숙종 임금께서 공주를 낳았는데 여덟 살이 되도록 손을 펴지 못하는 조막손이었다. 왕은 그것이 몹시 측은해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임금의 꿈에 어떤 여인이 나타나서 말하길 “내일 오후 궁궐 밖 담 밑에서 걸인을 데려다가 공주를 보이면 공주의 손이 펴지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꿈을 깬 왕은 날이 밝아오자 별감을 시켜서 “궁궐 밖 담장 밑에서 걸인이 있거든 데리고 오너라“고 분부하였다. 왕의 명을 받고 궁궐 밖으로 나와서 담 밑을 돌다가 자고 있는 걸인을 붙들어 대궐로 데려왔다.
왕자가 이 걸인을 보더니 “우리스님이시네! ” 하며 오랜 만에 만난 부모자식의 사이처럼 반기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화주승이 공주를 보고 “공주님께서는 왜 손을 펴지 못하고 계십니까? “ 하고 손을 만지자 신기하게도 공주의 손이 펴졌는데, 손바닥에 ”장육전“ 이란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관경을 보신 숙종 임금은 하도 신기하여 물으셨다. “너는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냐? ”
“전라도 구례군 지리산 화엄사에서 공양주로 있던 중이옵니다.” “중이면 어찌하여 머리를 기르고 거지꼴을 하고 있느냐? ” “중의 신분으로는 성안에 들어올 수없어서 머리를 기르고 이복은 얻어 입었으나 빨아 입지를 못하여 남루하게 되었습니다.“
“너 어찌하여 이곳에 온줄 아느냐? ” “소승은 사람을 죽인 죄인이라 상감께서 죄를 주시려고 잠아 온줄 압니다.” “네가 사람을 죽였다니 어찌하여죽였단 말이냐 ”
“제가 직접 제 손으로 죽인 것은 아닙니다만” 하고 자초지종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왕은 화주승의 말을 듣고 연조를 따져 보니 노파의 죽은 날이 왕비가 태몽을 꾸던 날인데 어떤 노파가 “하룻밤만 자게 하여주십시오."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확인을 하려고 전라감사를 시켜 조사를 해보았더니 모든 일이 거지 화주승의 말과 같이 “화주를 하러 절에서 나간지가 7~8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숙종대왕은 감격해하며, “참으로 거룩한 부처님의 신력이로다. 노파의 깨끗한 원력으로 오늘의 공주로 환생하였구나, 그 원을 들어줘야지”하며 장육전을 보수하도록 명하여 중수가 완성되자 편액을 내리되, 각황전(覺皇殿)이라 하였다. 이는 곧“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룬 진리의 법왕이란 뜻과, 임금님을 일깨워 중건하였다는 뜻으로 각황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법 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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